[스크랩] [인터뷰]풋내기에서 `진짜 프로` 되기까지…김인성의 우여곡절 축구인생
울산 현대 김인성이 28일 울산 동구 일산지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한 뒤 일산해수욕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하고 있다. 울산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울산=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프로는 책임감인 것 같아요. 스스로 그게 가장 많이 달라졌죠. 나를 내려놓고 희생하려는 마음을 두니까 모든 게 달라지더라고요.”
김인성(28·울산현대)을 만난 건 목포시청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19년 만에 팀의 FA컵 결승행을 이끈 다음 날인 28일. 대체로 선수들과 인터뷰는 클럽하우스 내부에서 이뤄진다. 이날만큼은 축구 인생에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울산에서 신명나는 시간을 보내는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허심탄회하게 듣고 싶었다. 딱딱한 느낌이 드는 클럽하우스에서 벗어나 푸른 바다와 청명한 가을 하늘이 한눈에 펼쳐진 울산 동구 일산지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니폼도, 트레이닝복도 아닌 검은색 카디건과 면바지를 말끔하게 차려입고 등장한 그는 “19년 만에 FA컵 결승 진출이라는 것을 뒤늦게 들었다. 내가 넣은 골이 그렇게 귀중한 골이었다니…”라며 슬쩍 웃었다. 때마침 옆 테이블엔 팀 동료 이종호 오르샤가 각각 예비신부, 아내와 나란히 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김인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종호는 기자에게 “우리 ‘인날두(김인성+호날두)’ 인터뷰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인성이 27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KEB하나은행 FA컵 준결승전 목포시청과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끈 뒤 호랑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산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내셔널리그 시절 데뷔골 상대도 목포시청 “어쩌다보니 고마운 팀”
초등학교 시절부터 발군의 스피드를 자랑한 그는 각종 육상대회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공 차는 것을 워낙 좋아했다. “당시 빠르고 잘 뛰어다니니까 다른 동네 친구보다 축구를 잘하는 편이었다.” 동네에 빠르고 공 좀 찬다는 유망주가 있다는 소문은 인근 학교 축구부 코치에게 전해졌다. 마침내 화랑초 축구부에서 김인성에게 정식 선수 입문을 권유했다. 축구를 좋아한 그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부모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이끌어주시는 편이다. 특별히 반대하지 않으셨다.” 부곡중~보인고~성균관대를 거치면서 김인성은 착실하게 성장했다. 성균관대 3학년 때 연령 대표와 대학 선발, 득점왕 등 여러 타이틀도 얻었다. 자신감이 부쩍 오른 그는 과감하게 중퇴, K리그 드래프트에 지원한다. 예상외로 프로팀은 김인성을 외면했다. 당시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김인성은 절치부심하며 프로가 아닌 실업리그에 도전, 내셔널리그 강릉시청 선수선발 테스트에 도전했다. 박문영 감독 눈에 들어 성인 무대 데뷔 기회를 잡았다. “솔직히 내셔널리그지만 엄연히 성인리그여서 첫 시즌부터 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감독께서 입단한 2011년부터 기회를 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하다.” 그해 강릉시청에서 리그 24경기 4골을 기록하며 주전 요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재미있는 건 당시 데뷔골 상대도 전날 FA컵 4강에서 격돌한 목포시청. 그는 “그때 내가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키커로 나서 골을 넣었다. 성인리그에서 해낸 첫 골이어서 지금도 생생하다. 이번에 FA컵 4강에서 골까지, 어쩌다보니 목포시청이 고마운 팀이 됐다”고 웃었다.
김인성은 “솔직히 그 나이에 K리그에 입단하면 출전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잘 나가던 선수들이 경쟁에서 밀려 프로가 된 뒤 내리막길을 걷는 경우가 있는데, 돌이켜보면 내셔널리그서부터 시작하기를 잘한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성인 레벨 축구를 경험하면서 기량을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울산 소속으로 목포시청을 상대할 때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처럼 프로 진출을 꿈꾸는 내셔널리그 후배들이 사력을 다해 뛰는 모습이 와닿았다. 그는 “(정)훈성이는 대학교 후배인데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선수가 정말 열심히 뛰더라. 보셔서 알겠지만 내셔널리그 선수들이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지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했다. 또 “나 역시 내셔널리그가 밑바탕이 돼 기량을 끌어올려 프로에 올 수 있었다. 이들 역시 꼭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운명처럼 찾아온 CSKA모스크바…축구계 신데렐라 거듭나다
김인성 커리어에서 축구 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명문 팀인 CSKA모스크바 진출이다. 일본 축구의 상징과 같은 혼다 게이스케가 몸담았던 2011~2012시즌과 2012~2013시즌 한솥밥을 먹었다. 당시 K리거도 아닌 내셔널리그 소속 선수가 유럽 명문 팀으로 전격 이적한 건 큰 화젯거리였다. 단숨에 무명에서 신데렐라로 거듭났다. 그는 “강릉시청에서 자신감을 되찾은 뒤 큰 무대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며 “마침 러시아리그에 정통한 한 관계자를 통해 CSKA모스크바와 연결됐다. 기존 한국 선수 3명이 입단테스트에 참여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뒤늦게 합류했다”고 회상했다. 정작 미리 테스트를 준비한 이들이 아닌 김인성이 선택받았다. “현지에서 3~4일 모스크바 유스 선수들과 훈련했다. 갑자기 터키 안탈리아에서 훈련 중인 2군 팀에 합류하라고 하더라. 터키로 이동해서 훈련하면서 연습 경기를 뛰었는데 마지막 날 임팩트있는 활약을 펼쳤다. 그랬더니 스페인에서 전지훈련 중인 1군에서 오퍼가 왔다,” 깜짝 이적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터키에서 혼자 비행기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1군에 합류해서 보름 훈련했는데 갑자기 또 독일로 가라더라. ‘이게 뭐지?”생각했는데 현지 관계자가 ‘아마 한국에 네 소식이 뉴스로 전해질 것’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독일행은 메디컬 테스트때문이었다. 그렇게 김인성은 CSKA모스크바 1군과 전격 계약했다.
김인성은 “얼떨떨했다”며 “나중에 레알 마드리드와 유럽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할 때 ‘아 내가 정말 유명한 팀에 오긴 왔구나’라고 느꼈다”고 웃었다. 큰 팀에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느끼는 계기가 됐다. 리그컵 5경기에 출전한 것 외엔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는 “프로 경험이 없다 보니 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혼다를 보면서 ‘아 정말 저게 프로구나’라는 것을 느꼈을 정도로 배운 게 많았다”고 털어놨다.
◇김도훈 감독님은 운명이죠…“개인 목표보다 우승 트로피가 우선”
모스크바 생활을 정리한 김인성은 2013년 전격적으로 K리그에 입성했다. 당시 그를 선택한 건 성남 일화(성남FC 전신). 유럽에서 얻은 경험과 자신감으로 호기롭게 국내 최상위 리그에 도전했으나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성남에서 31경기를 뛰며 연착륙했으나 2골 2도움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듬해 전북 현대로 적을 옮겼지만 스타가 즐비한 공격진에서 출전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11경기 무득점의 초라한 성적표를 떠안았다. 결국 이듬해 연봉 50% 삭감을 받아들이며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었다. 김인성 프로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공격수 출신 김도훈 감독은 인천에서 만난 그는 K리그에서 정상급 공격수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전까지 내 플레이 개념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는데 김 감독께서 내 스피드를 활용해서 측면에서 돌파를 통해 상대 수비를 흔드는 데 주력하기를 바랐다. 구체적인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자리를 잡더라”고 했다. 인천에서 32경기를 뛰며 5골을 기록했다. FA컵도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프로 데뷔 이후 가장 값진 시간을 보냈다.
인천에서 활약을 앞세워 2016년 명가 울산에 왔지만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고 부상까지 겹치는 등 시련의 시간을 보냈다. 16경기(1골) 출전에 그치며 또 어둠의 터널에 갇혔다. 그런데 올해 인천 시절을 함께한 김 감독이 부임, 2년 만에 다시 사제의 연을 맺었다. “울산으로 김 감독께서 오신다는 얘기 들었을 때 솔직히 기뻤다. 나를 잘 아는 감독이기에 마음을 잡고 다시 해보자는 의욕이 생기더라. 누구보다 동계훈련서부터 다부지게 몸을 만들었다.”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리그 30경기에서 4골 2도움, FA컵에서 2골,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2골 등 현재까지 8골을 해내면서 프로 첫 한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이 눈앞에 다가왔다. 단순히 공격포인트가 아니더라도 목포시청전처럼 적재적소에 힘이 빠진 상대 수비를 빠른 발로 흔들면서 동료들에게 여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에 맞게 리그(3위)와 FA컵(결승 진출) 모두 팀이 호성적을 유지하면서 생애 첫 우승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4년 전 성남에서 만난 김인성은 풋내기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젠 어느덧 프로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말 한마디 한마디 진중함이 묻어났다. 기량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 K리그에 왔을 땐 그냥 열심히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이젠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라며 “확실히 이젠 경기 흐름이 보이는 것 같다. 공을 잡았을 때 스피드만 활용하는 게 아니라 템포에 맞게 줄 땐 주고 돌파할 땐 돌파한다. 스스로 여러 옵션을 두고 있으니 한결 여유가 생긴다”고 웃었다. 김 감독과 2년 전 놓친 우승컵을 이번만큼은 잡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개인적인 목표보다 리그든 FA컵이든 팀 우승컵을 꼭 들어 올리고 싶다”며 “축구 인생 자체가 너무 우여곡절이 심했기에 이제 웬만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 현재 팀 분위기가 매우 좋은데 희생하는 마음으로 팀을 위해 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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